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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경성에 세워진 제약업체 ‘천일약방’의 1924년 모습. 상처를 아물게 하는 조고약을 대량 제조해 판매했다. 사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전통 한약업의 근대적 변신
1937년 발간된 ‘대경성사진첩’은 당시 경성의 명소와 다양한 회사, 상。을 업종별로 소개한 사진집이다. 그중 ‘약。(藥店)의 부’가 있다. 약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회사들이다. 모두 13개 업체를 소개했는데, 다수는 일본계 회사이거나 일본 본토 회사의 경성 지., 출장소 등이다.위치도 대개 일본인 중심지인 본정(本町)이나 남대문통이 많았다. 조선계 회사로는 예지정(현 종로구 예지동)의 ‘천일약방(天一藥房)’과 화천정(현 중구 순화동)의 ‘동화약방(同和藥房)’을 다뤘다. 두 곳 다 전통적 한약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들이다. 》
조선 후기 한양의 도시상업 발달은 한약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략 18세기경에는 한약재와 약품의 상품화가 이뤄졌다. 실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는 “약포는 대로 만든 발을 늘어뜨리고 신농유업(神農遺業), 만병회춘(萬病回春) 등의 호를 내걸었다. 약 파는 사람은 봉사(奉事)라고 부른다”면서 당시 한양 내 한약방의 모습을 묘사했다. 약방은 구리개(일제강。기 황금정·현 중구 을지로)와 종로에 많았지만 외곽의 남대문과 서대문 부근, 용산 일대에도 들어섰다.
한약업은 개항 이후 큰 도전에 직면했다. 효과가 좋은 양약이 유입된 것이다. 양약은 개항장에 개업한 일본인 병원이나 서양 선교사가 설립한 병원을 통해 유통됐다. 이에 더해 일본인 약종상의 활동도 큰 몫을 차지했다. 서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약종상이었다. 이들은 동업자단체를 조직해 약품 시장을 독.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일본의 의대, 학회 등과 지속적인 학술 교류를 하며 성장했다. .차 한반도에서 일본 세력이 강해지고 마침내 강제병합에 이르는 정치적 상황도 이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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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 한약방도 있었으나 일부는 전통적인 첩약(貼藥) 방식을 넘어서 미리 약을 대량으로 제조하여 판매하는 매약(賣藥) 방식을 도입하고, 나아가 개발한 매약의 상표를 등록하는 등 여러 활로를 모색했다. 천일약방을 설립한 조근창은 원래 선대부터 한방의 종의(腫醫·종기 전문의)였다. 그리고 조씨 집안에는 대대로 가전돼 온 비약이 있었다. 이를 표준화해 대량으로 제조·판매한 것이 유명한 조고약(趙膏藥)이다.
여러 한약방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조선매약주식회사의 광고 포스터. 한방 기반 소화제인 영신환을 내세우고 있다.사진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13년에는 구리개의 여러 한약방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조선매약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선매약도 한방 기반의 소화제인 영신환(靈神丸)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매약을 생산했다. 조선매약 설립 이듬해 한 기사를 보면 “경성 동현(銅峴·구리개)에 매약주식회사가 창립한 후에 회사원들이 고심 열성으로 약재를 정택하며 제법을 개량하여 모든 약제를 새로 의결하였”다고 했다.(‘한약계의 대혁명’, 신한민보, 1914년 7월 23일) 단지 매약을 대량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법 자체를 개량했다는 의미이다.
제조법 개량의 핵심은 양약의 약재나 제조법을 수용해 한방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약의 명칭은 환, 단, 산, 수 등 전통 한약식으로 붙였지만 그 본질은 양약을 수용해 개량한 ‘신약’이었다. 동화약방의 대표적 매약인 활명수의 제조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1897년 아들 민강과 함께 동화약방을 창업한 민병호는 원래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 벼슬을 했다.
그는 전문 의원은 아니었으나 선전관으로 궁궐에 출입할 수 있어 궁중에서 내려오는 여러 비방을 익힐 수 있었다. 더불어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양약의 우수성을 전해 듣고 이를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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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먼저 큼직한 가마솥에 위장약 계통 각종 한약 건재를 넣은 다음 물을 붓고 한참 달이면” 나오는 “생약의 약물”을 여과하고 여기에다가 “당시 새로 들어온 클로로포름과 멘톨을 묘미 있게 배합”하여 활명수를 제조했다.(동화약품백년사, 1998년) “본국재(本國材)로 양제(洋製)한 관허”라는 동화약방의 광고는 활명수의 특징을 간명하게 말해 준다.(대한매일신보, 1910년 6월 25일)
대형 약방이 제조한 신약은 대량 유통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판매 방식도 예전과 달라야 했다. 대형 약방은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구축했다. 동화약방의 경우 이미 병합 직전인 1910년 초 행정구역별로 판매 예상액을 10원, 1000원, 1만 원으로 구분해 출장소, 군 지., 도 지.을 설치했을 정도였다.(대한민보, 1910년 1월 1일)
조선매약도 전국의 판매。을 청매., 특약., 대리.으로 구분해 지정했다. 청매。은 12가지 약품만 선택해서 파는 소규모 판매。이었고, 특약.은 매년 100원 이상의 약품 판매를 약정한 곳이었다. 대리.은 보증금으로 200원 이상을 회사에 적립하고 매년 500원 이상의 판매 실적을 달성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30년대 후반 천일약방은 “본. 외에 황금정, 대구, 평양, 광주에는 큰 지.이 있고 50여 개소의 대리。과 1400여 개소의 특약.이 있으며 조고약을 소매하는 곳은 약 1만여 곳이나” 됐다. 종로에 본。을 두고 일본인 중심가인 황금정에도 지。을 둔 것이 눈에 띈다.(‘반도의약계대관’, 삼천리, 1938년 1월호)
판매망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한 판매.이 여러 약방의 약을 같이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화약방 지.을 운영하는 이동원이라는 사람이 화평당, 제생당이라는 약방의 약도 같이 판매했다는 기록이 보인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인물자료) 판매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는 철도의 역할이 컸다. 동화약방은 판매액 10원당 1원, 100원당 5원의 운송비를 책정했는데 이 비용은 철도 요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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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기 근대화, 도시화하는 사회상에 대한 전통 한약방의 적응력은 상당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회사인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의 활명수 광고 간판. 동화약품은 1897년부터 같은 자리(현 서울 중구 순화동)를 지키고 있다. 사진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경성의 한약방 중에는 사업적 성장을 넘어 특별한 흔적을 남긴 경우도 있다.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 민강은 일찍이 기독교에 귀의해 상동교회와 정동교회를 다니며 인간관계를 맺었다. 1907년 서소문 밖에 소의(昭義)학교(현재 동성고)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는가 하면, 1918년에는 약학강습소를 정규 조선약학교(서울대 약대의 전신)로 개편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1920년대에는 조선 물산을 장려할 목적으로 대광사(大光社)라는 조합을 조직하고 경성소비조합 발기인으로도 활동했다. 1909년에는 안희제, 서상일 등 경상도 지역 청년 인사들이 중심이 된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대동청년단은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위한 상업 활동, 인재 육성 등에 중.을 둔 단체로, 민강의 교육·계몽운동은 청년단 활동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민강은 ‘경성의 성공한 조선인 실업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더 직접적인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추진된 한성정부(漢城政府) 수립 운동에 참여해 임시정부 선포를 위한 국민대회 자금을 동화약방을 통해 출납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에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행정조직인 연통부(聯通府)를 동화약방에 설치하고 약방의 화물 취급.을 통해 임시정부에서 전달되는 문서류를 수령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민강은 이 사건으로 1920년 12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2년 1월 건강 악화로 가출옥했다. 1930년 초에는 동화약방에 거처하는 이화여고보생 민금봉(민강의 친척)이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 계획에 동참했다가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다.(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이런 흔적이 쌓여 현재까지 100년 이상 이어진 동화약방 자리는 전통적 한약업의 근대적 전환을 상징하면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장소가 됐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임시정부의 행정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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